사진이 가치가 있으려면 소위 '내용, 혹은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가?

인터넷의 갤러리에 올려진 사진에 대한 평중에서 그 사진을 비판하는 주된 방법중 하나는

그 사진이 내용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 사진은 잘 찍긴 했는데, 아무 내용이 없고 그냥 이미지일 뿐이므로 별볼일 없다.'는 식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를 하는 듯 하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생각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점점 모호해진다.

첫째로 과연 내용이 없는 사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일반인들이 캐치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뜻일진데

소위 내용이 있는 사진들을 보면 참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시장에서 노인들을 흑백톤으로 찍으면 인생의 비애가 내용이고,

꽃을 배경으로 연인들을 찍으면 사랑이 내용

주밍샷을 하면 스피드가 내용이고

핸드블러가 나오면 술취한 도시인의 바쁨이 내용인지..

전에 강좌에서도 말한적이 있지만 나는 뻔한 사진을 찍기가 너무 싫다. 물론 찍어도 찍어도 뻔하게 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아뭏든 내용이 작가 혼자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라서 뛰어난것도 절대 아니다.

위에서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흔히들 얘기하는 사진의 내용이란 것들에 대한 생각의 정리는

이미 다른 예술에선 20세기 초에 종말을 고했다..

칸딘스키가 몬드리안의 추상미술이 나오면서 미술은 일반인들과의 소통을 포기했고

(물론 포스트모던한 미술에서 대중성을 필수요소로 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그건 또 다른 얘기이다)

음악에서는 12음기법의 쇤베르크가 등장하고 이후귀를 찢는 노이즈까지도 음악의 요소로서 포용했다.

이후 미니멀리즘 같은 사조에서는 도대체 계속 반복만 하는 지루한 스타일까지도 사용되었다.

아시다시피 문학에서는 의식의 흐름 수법부터 시작되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모방까지

일부러 서사적 스토리를 피하는시도도 많다.

이게 멋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필연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미술의 하이퍼 리얼리즘 같은 경우를 보면 극단적인 현실감으로 현대인의 비애를 표현하는 것이

내용이라고 한다. 작품을 보면 특정한 내용이 없으며 일관된 서사도 없다.

나는 사진에서 스토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뻔한 서정성도 너무 싫다..

오직 추구하는 것은 주제의 배치, 날카로운 선예도와 디테일, 적정노출로 인한 눈의 쾌감이다.

더 이상 바라는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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